함께 일하는 K피디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
촬영나갔다가 협조해준 회사의 홍보실 직원과 인연이 되어서 몇달째 사귀고 있는 중이다.
자주 여자친구 이야길 해주곤 하는데,
가끔은 좀 귀찮다 싶을 정도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아서 휘휘 흘려듣기도 하고
<너무 사적인 얘기까지 나한테하면 여친에게 실례가 아닐까?>하며
살짝 돌려서 그만해라는 뉘앙스를 띄우기도 하건만
<아냐, 내 여친은 남들에게 자기얘기 하는것 좋아해>란다.
K피디와는 같은 팀으로 일을 하다보니 자연히 붙어있는 시간이 많고
그러다보니 여친에게 전화가 올때마다 내가 함께 있는 경우가 많았다.
보통의 연인처럼 그녀도 <지금뭐해? 누구랑 있어?> 이런걸 물어오는 모양인데
그럴때마다
< 응, 지금 아씽작가랑 밥먹고 있어 >
< 편집실이야. 아니, 혼자 아니구 아씽작가랑 같이 있어>
< 응 지금 작가랑 회의 중이야>
< 일하다가 너무 답답해서 작가랑 놀러나왔어. >
이러다보니 자연 여친은 내 존재가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편집실은 어떤 구조냐, 밀폐 되어있느냐, 몇시간씩 편집을 하느냐, 창문은 있냐,
밤샐때도 같이 있냐, 편집할때 다른 이야기는 안하고 편집만하느냐, 꼭 작가와 함께해야 하나...
그의 여친은 이런 저런 질문을 하며 기분 나쁜 내색을 하는데
K피디는 그녀의 질투가 귀여워서
그녀를 안심시키기는 커녕 묘하게 그 질투심을 부채질하는 모양이었다.
여친에게 걸려온 전화를 일부러 나에게 받으라고 하기도 하고 (첨엔 장난삼아 몇번 받기도 했다)
가끔은 여친이 K피디에게 나를 바꾸라고 해서 통화를 하기도 했다.
물론 화를 내거나 기분나쁘게 대하진 않았지만
< 오빠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만나면 아씽작가님 얘기를 너무 많이 해서요
한번 만나보고 싶어요~ 저희 오빠 일할때 어때요? 못됐죠? 잘해주나요?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묘하게 떠보는 듯 경계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도 뭐 그러려니 하고 별로 신경쓰진 않았는데
어느날은 한밤중에 편집실까지 직접 찾아와 어색한 인사를 나눈뒤
2시간 정도 뒤에 앉아 감시아닌 감시도 하다가
새벽녘에야 졸음에 겨워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다 며칠 뒤에는 K피디가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 내 여친이 나 너무 좋아하는것 같애. 어젠 내가 다른 여자와 밤샘 작업하는게 너무 싫다고
막 울.더.라.~ >
< 편집실서 내 몰골을 보고도 그런말을 해? 밤샘작업 암만해도 아무일 없다고 잘 좀 얘기하지 그랬어>
< 물론 무슨일 있다고는 말 안하지. 근데 여친이 작가의 존재를 신경쓸수록,
여친이 나에게 더 집착하고 더 신경쓰고 안달내하는것 같아서 솔직히 재밌어.
예전엔 좀 튕기는 것 같더니 지금은 더 매달린달까? 안달이라까? 질투하는것 같아.>
< 지금 댁들 사랑을 위한 질투에 나를 이용한다는 거야??? ㅡ.ㅡ;>
< 뭐 이용한다긴 그렇고... 나도 몰랐는데 내가 은근 걔한테 아씽작가 얘길 많이 했나봐.
그런데, 걔가 어느날 부터 자꾸 신경을 쓰니까 재밌고, 좋기도 하고...
역시 질투는 사랑의 묘약인게야! 종종 약 쓸테니까 신세 좀 질께.>
< 그참... 청춘 남녀 사랑에 내가 약이 된다니 안 도와줄수도 없구... 그치만 약 너무 쓰지마!
너무 질투나게 하면 여자쪽이 지친다구... 적당히 해! >
살짝 걱정은 되었지만 그래도 뭐 둘 사이의 문제니 알아서 하겠지 싶었는데
몇주가 지나서 피디가 심각하게 말했다.
그녀 왈 자신이 없다고 한다는 것이다.
자기는 왜 그렇게 한밤중에 작가와 함께 편집을 해야하는지 이해를 못하겠고,
동료든 뭐든 다른 여자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도 (속 좁은것 같지만) 견디기 어렵고
그렇다고 직업을 바꾸랄수도 없는 노릇이고,
앞으로도 계속 한번씩 이렇게 속상해야 한다면 그걸 견디면서 계속 만날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바보! 질투를 유발하되 그녀를 안심시켰어야지!
물론 그는 그녀에게 잘해주고 좋아해주고 즐겁게 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질투를 견딜 수 있는 믿음을 주진 못했었나 보다.
(어쩌면 아주 드문 가능성으로. 그녀가 심한 질투심의 소유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물론 그녀와 헤어질 생각은 없었다.
일에 관한것은 어쩔수 없다하더라도
내 이야기를 포함한 다른 여자 이야기는 다신 하지 않기로 약속하면서 그녀를 달랬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이미 심한 상처를 받은 듯 했고 쉽게 그 마음이 회복될것 같진 않았다.
여전히 그들은 만나고 있지만 어째 예전 분위기 같진 않다.
K피디 역시 < 그녀와 내가 결혼을 하거나 오래 사귀게 될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질투는 사랑에 있어 빠질수 없는 감정이다.
미처 깨닫지 못한 사랑을 일깨워 주기도 하고,
조금씩 애정이 식어가거나 권태기의 연인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애인이 나 때문에 질투를 하면 피곤하기도 하지만 기분이 좋아진다.
아, 이사람 나 정말 좋아하는 구나... 살짝 고소한 그런 기분.
그러나 반대로 내가 애인 때문에 질투를 하면 그건 죽을 맛이다.
내 애인 맘이 못 미더울때는 물론이고, 미더울때에도
눈에 가시같은 그년이 (혹은 그놈이) 계속 꼬리치거나 쫓아다니면 어쩌지...하는 불안감
이럴땐 믿을수 있는 상대방의 행동이나 말들은 사랑을 더 강해게 해주는 묘약이 되지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거나 ,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더 약을 올리게 되면
사랑을 깨지게 만드는 독약이 된다.